불로장생/대메뉴3 > 링크 > [단편] 아이돌 A양 동영상

[ 증권가 찌라시로 떠돌던, 인기 아이돌 A양의 동영상 루머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인을 A양의 전남친이라 밝힌 익명의 아이디가 올린 3초짜리 동영상이 웹상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A양의 소속사에서는 동영상 속 인물이 A양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 . ]

뉴스를 본 최기자는 습관적으로 A양 키워드를 검색해 나갔다. A양이고 뭐고도 아닌, 인기 아이돌그룹 스프링데이의 메인보컬 임여우란 키워드를 말이다.

연예부기자의 습관이었겠지만, 현재 최기자는 기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최기자가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모두가 알고싶어하는 내용을 알려줬을 뿐인데 왜 내가 욕을 먹고 잘려야 했을까? 단지 몇주 일직 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가장 먼저 3초짜리 동영상을 찾아 본 최기자는 확신했다.

" 뭐야? 빼박 임여우잖아? "

동영상의 내용은, 밝게 웃고 있는 일반인 임여우의 얼굴 클로즈업 화면과 '오빠~'라는 한마디의 음성이었다. 화질이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최기자쯤 되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 할 눈썰미는 충분했다.

임여우가 맞다니. 국내 최정상 아이돌 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이자, 청순가련의 대표 아이콘인 그 임여우가 맞다니. 정말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곧장 임여우의 팬까페를 찾아들어간 최기자는, 본인이 꽤 높은 등급의 회원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스스로 정말 열심히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태가 사태인지라,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수십개씩의 게시물들이 새로 올라왔다. 그래도 개중 조회수와 댓글수가 있는 게시물들을 골라보던 최기자의 눈에, 어떤 게시물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 임여우를 위해서 5천만원 쓸 수 있는사람? ]

새글의 파도에 묻혀버려 댓글 하나 달려있지 않은 글이었지만, 최기자는 그 게시물을 클릭했다. 다행히도 뻘글이 주는 허무는 아니었다.

[ 임여우를 위해서 5천만원정도 쓸 수 있는사람? 쪽지 좀 보내줘. ]

잠시 잠깐 마우스를 멈춘 최기자는 생각했다. 뭘까? 5천만원을 쓸 수 있는사람을 왜 찾을까??

최기자의 오랜 기자경력이 쉴새없이 어떤 직감을 야기했다.?

최기자는 당장 쪽지를 보냈다. 어차피 글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 임여우를 위해서라면 5천만원 정도야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최기자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올해들어 가장 중요한, 어쩌면 인생에 있어 세손가락 안에 드는 이벤트가 벌어질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답장은 빨랐다.

[ 임여우의 어느정도 팬인지 인증 가능합니까? 5분 안에요. ]

" 옘병! "

입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최기자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최기자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었고, 행동은 더 빠른 사람이었다.

반바지에 런닝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이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운동화를 마저신고,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가수들 취재를 할 때 선물로 받고 한쪽에 방치해뒀던 앨범 더미를 마구잡이로 뒤졌다.?

" 오케이! 스프링데이 1집! "

다행히 친필싸인도 적혀있었다. 1집의 친필싸인이면 충분했다. 1집 시절의 스프링데이는 완전 듣보잡이었으니 말이다.?

최기자는 당장에 집으로 올라가 싸인 씨디를 인증해 쪽지를 보냈다. 곧,

[ 오! 정말 팬이시군요.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임여우를 위해 5천만원을 쓰실 수 있으십니까? ]

[ 그정도 재력은 충분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

[ 제 카톡 아이디 입니다. ooooo ]

" 오케이! "

최기자는 당장 그에게 톡을 보냈다.

[ 안녕하십니까? ]

[ 안녕하세요 ]

[ 궁금합니다. 오천만원으로 어떻게 임여우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까? ]

[ 임여우 동영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기자는 대답을 잠깐 고민했다. 임여우가 아니라는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맞다고 인정을 할 것인가. 최기자는 촉대로 행동했다.

[ 안타깝지만... 임여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

한동안의 침묵이 최기자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유를 물을까 터치하려던 찰나, 그에게서 답이 왔다.

[ 임여우 동영상 진본을 구입하려 합니다. 1억원에... ]

최기자의 등골로 소름이 올라왔다. 아주 기분좋은 소름이었다. 거울이 있었다면 희열에 찬 본인의 얼굴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 어떻게? ]

[ 3초 동영상에 연락처가 숨어있었습니다.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겠지만, 저는 동영상 속 인물이 임여우인지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수십배씩 동영상을 확대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

[ 그게 정말입니까? ]

[ 그에게서 답장도 받았습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이 1억원인데, 제가 가진 돈이 5천만원 밖에 안됩니다. 만약 님께서 임여우를 위해서 5천만원을 쓰실 수 있다면, 저와 함께 그 진본 동영상을 구입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폐기시켜 버립시다. 임여우를 위해서. ]

최기자는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만약 임여우 동영상의 진본을 구할 수만 있다면??

5천만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임여우 동영상 진본의 가치는 5천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

거기다가 최기자 본인의 기자 복귀는 물론이고, 어쩌면 기자정신 운운한 그새끼들을 발아래 무릎 꿇릴 수도 있었다. 비굴하게 웃는 선배들과 사장의 낯짝을 볼 수도 있었다.?

최기자는 기쁜 마음으로 톡을 보냈다.

[ 물론입니다. 임여우를 위해서라면 5천만원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쓸 수 있습니다. ]

[ 정말입니까? ]

[ 정말입니다!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님같은 진정한 팬분이 먼저 연락처를 발견한 것이 말입니다. 저희가 그 동영상을 구입해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립시다! ]

[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 진정한 임여우의 팬이시군요! 제 연락처 입니다. 010 0000 0000 ]

이후의 상황은 일사천리였다. 최기자는 전화를 통해 임여우의 진정한 골수팬을 연기했다. 전화기 너머의 그, '공치열'과 금새 호형호제까지 하며 의기투합했다.

" 치열아, 그럼 니가 그사람한테 연락해보고 약속장소랑 날자 잡히면 형한테 알려줘. 형 바로 돈 뽑아서 달려갈테니까. "

" 알겠습니다 형님!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최기자는 사전준비를 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몰래카메라를 점검하고, 호신용 전기충격기도 꺼내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 공치열에게서 전화가 왔다.

" 형님! 약속 잡았습니다! 이틀 뒤 낮 11시, 000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

" 그래? 알겠다. 그럼 이틀 뒤 9시까지 000 근처에서 만나자. "

" 예 형님! 그때 뵙겠습니다! "

최기자의 심장은 흥분감으로 짜릿하게 뛰었다. 이제 이틀뒤면 연예계 최고의 무기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무기다. 최기자가 이 무기를 활용할 방법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그 무궁무진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최기자는 어느새 기분좋은 상상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최기자는 밤새 흥분으로 잠을 설쳤지만, 아침이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룰루랄라 샤워를 하고, 옷을 깔끔히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내내 싱글벙글 하던 최기자도, 은행에서 찾은 현금 5천만원을 손에 들자 조금은 긴장감을 느꼈다. 이렇게 큰 현금을 직접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곧 다른이의 손으로 넘어갈 돈이었지만, 아깝진 않았다. 어제 상상한 무궁무진한 계획속에는 재테크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 최기자는 공치열에게 안부 카톡을 날렸다. 시시콜콜한 임여우 찬양으로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고보면, 공치열이 진본 동영상을 삭제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최기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말빨을 믿었고, 팬이라는 작자들의 어긋난 소유욕을 믿었다. 스스로 골수팬이라고 자처하는 놈들일수록 그 욕망은 심했다.

최기자는 내일을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나니,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임여우 동영상을 얼른 휘두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고작 오늘 하루를 참아내기도 이렇게나 힘들다니.

문득, 자신을 앞장서서 내쫓아내던 공선배가 떠올랐다. 기자정신 운운하며 손가락질 하던 그선배. 뒤돌아 술자리에선 회사 이미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마음에도 없던 변명을 해대던 그선배.

최기자는 본인도 모르게 공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그래 ]

" 공선배. 별 일 없죠? "

[ 임마 별 일 없으면 굶어죽어야지. 그래, 요즘 뭐하냐? ]

" 별 일 없어 굶어죽고 있습니다 하하... 요즘 뭐, 임여우는~~ "

[ 크~! 임여우 걔 그렇게 안봤는데 말야! 그렇게 예의바르던 애가 그럴줄 누가 알았겠냐? 요즘 애들 참 몰라~! ]

" 하하... 뭐, 혹시 임여우~~ 정보 같은거 없죠? "

있을리가 없겠지! 최기자는 속으로 우월감을 즐겼다.

[ 정보? 정보는 왜 임마~! 니가 정보는 알아서 뭐할라고? 너 임마 이제 기자도 아닌 놈이~...그냥 이쪽일은 완전히 신경끄고 좀 쉬어 임마. 그게 너한테도 더 좋을꺼야. ]

" ... "

순간, 최기자는 울컥했다. 저 말투. 최기자가 쫓겨나던 날에도 들었던 저 말투!?

최기자는 스스로가 흥분한 걸 다스리지 못했다. 아니, 다스리지 않기로 했다.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고, 하루 일직 거래를 시작해도 나쁜일은 없을거라 계산했다.

" 하하 잘 쉬고 있고요 선배. 말그대로 저야 쉬는놈인데, 현역인 공선배는~ 뭐, 정보가 너무 느린것 아닙니까? 쉬는놈 보다 정보가 없어서야~ "

[ 무슨 소리야? ]

" 말씀드리기 그렇긴 한데... 제가 임여우 동영상 원본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 뭐? 원본? ]

" 예. 원본 말입니다. "

[ ...... ]

당황했으리라! 놀랐으리라! 진의를 파악하고 싶으리라! 최기자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띄었다. 한데,

[ 어휴~ 임마...너 언제까지 이쪽에 미련을 못 놓을래? 내가 솔직히 말 안해주려고 했는데, 그냥 말해줄게. 'ㅁㅁ엔터'에서 이미 나섰단 소문이다. 이틀 뒤에 거래하기로 했다더라. 큰거 1장에. ]

" 뭔?! "

[ 그만 좀 해라 임마. 너 그렇게 나가게 된건 미안하긴 한데... 이렇게 추해질 필요까진 없지않냐? 좀 느긋히 쉬면서 머리 좀 식혀 임마. 이쪽 일은 다 잊고. ]

" ...정말입니까 그게? "

[ 짜샤! 그럼 가짜냐? 벌써 알만한 놈들은 다 알고 있어 임마! ]

" ...... "

전화를 끊은 최기자의 머리가 혼란속에 가라앉았다.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공치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치열아! 너 그사람이랑 내일 거래하기로 한거 확실하지? "

" 그럼요! 내일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

" 끄응... 치열아. 내가 아는 기자형님한테 방금 들은 얘기가 있는데...그놈이, 이틀뒤에 ㅁㅁ엔터에 원본을 1억에 팔기로 했단다. "

" 예-?! 그럴리가! 분명 저희랑 거래하기로 다 약속했습니다! "

" 치열아 내 생각엔 말야... 그놈이 원본 동영상이 아닌 복사본을 여러명한테 팔 생각 같은데 말야? "

" 뭐요?! 이런 시발 세끼가! 아~~나, 어쩌죠?! 당장 전화해서 따집니까?! "

" 아니아니! 그랬다간 그놈이 우리와 거래를 안하겠다고 하면 그만이야. 숨겨야돼. 숨기고 내일 그놈을 만나서 직접 담판을 지어야 돼! "

" 아 진짜 시발, 이런 시발 세끼가 진짜! 후-!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내일 어쩝니까? "

"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진본을 받을 방법을... 찾아봐야지. "

" 아~ 시발! "

전화를 끊고, 최기자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그놈에게서 유일본을 보장받을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정말로 최악인것은, ㅁㅁ엔터가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 어쩌면, 오늘 갑자기 누군가 동영상을 터트릴지도 몰랐다. 최기자의 입술이 바싹말랐다.

그렇다면 남은건 '시간 싸움'이었다.?

최기자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최소한, 우리가 최초의 동영상 거래자라는 가정하에, 내일 당장 동영상을 써먹을 수 있어야 했다. 늦어도 이틀 안에는 동영상을 이용해야 했다. 동영상을 구하자마자 가장 먼저 어디와 접촉해야 하는가? ㅁㅁ엔터는 죽쒔고. 일단 우리 회사? 다른 회사들? 빌어먹을, 공선배 말대로 ㅁㅁ엔터의 동영상 구입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있다면, 동영상의 가치가 한없이 떨어졌다. 그나마 ㅁㅁ엔터가 먼저 터트릴 리는 없으니 휴지조각은 아닐테지만...젠장 젠장 젠장! 어제 하루종일 상상했던 즐거운 계획들이 무수히들 날아갔다.

암담했다. 최기자는 구겨진 얼굴로, 오직 한가지만을 빌었다. 제발! 오늘 누군가 임여우 동영상을 터트리지 말기를!

아침 8시. 공치열과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최기자의 얼굴은 심각히 굳어있었다. 다행히 어제는 아무일도 없었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일단 동영상을 입수한 뒤엔 그놈을 다그쳐야했고, 가능하다면 ㅁㅁ엔터와의 거래를 포기시켜야 했다. 이후엔 공치열과 동영상을 나눠가지든, 빼앗든간에 빠르게 동영상을 확보해야 했고. 곧바로 관계자들과 딜에 들어가야 했다. 최기자의 오늘 하루는, 정말로 긴 하루가 될 것이었다.?

최기자가 약속 장소인 까페에 먼저 도착해 앉아있으니 곧, 공치열이 나타났다.

" 최무정 형님? "

" 아..공치열? "

공치열의 첫인상은 어떤부분은 최기자의 예상과 같았고, 어떤부분은 예상과 달랐다. 임여우에 맹목적인 돌아이에다 단순 할 것 같은 느낌은 맞았다. 한데 루저스러울 것 같았던 외향은 틀렸다. 건장한 근육질의 덩치였던 것이다.

" 시발, 그 새끼 진짜 어떡합니까?! "

" 후..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지. "

" 아 시발! "

몹시 분노한 듯 흥분해 있는 공치열을 보고 최기자는 걱정이 되었다. 공치열의 불안정성이 일을 그르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혼자 고개숙이고 고민하던 공치열이 문득 던지는 말이-

" 시발, 그새끼 그냥, 죽여버릴까요? "

" ...? "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공치열의 눈빛이 서늘했다.

" 그새끼가 살아있는 한, 동영상은 영원히 사라지질 못하는거 아닙니까? ...그냥 죽여버립시다 형님. 예? "

" 뭐... "

최기자는 당황했다! 공치열이 이정도로 광신적일줄은 몰랐다. 공치열의 눈빛은 전혀 농담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자 순간, 최기자의 기자 텐션이 마구 솟구쳤다! 임여우 팬의 어긋난 광기? 임여우와, 섹스 동영상과, 살인과, 미친 팬!

기자에게 있어 너무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스토리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구성이었다!

" ...어쩌면 그러는게 좋을지도 모르지. "

" 그렇죠? 그새끼는 살아있으면 안됩니다. 임여우를 위해서. 다-, 임여우를 위해서... ?"

" ... "

최기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분좋은 소름이.?

최기자와 공치열은 약속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 공치열의 차였다. 그놈과의 거래도 공치열이 나서서 할 것이다. 최기자는 철저히 뒤로 빠져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공치열이 나서서 해야했다. 최기자가 할 일이라곤, 점퍼 단추의 몰래카메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 뿐이었다.

불법적인 거래를 위한 장소답게,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차를 멈춰세우고 기다리자 곧, 다른 차 한대가 와서 섰다. 공치열과 최기자가 차에서 내렸고, 상대방 차에서도 '그'가 내렸다.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한 사내였다.?

최기자는 뒤에 가만히 서 있었고, 공치열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도 앞으로 나서서 공치열을 맞이했다.?

마주서자마자 공치열은 곧장 가방을 열어 현금다발을 확인시켜주었다.

" 동영상 원본은? "

" 이겁니다. "

그가 USB파일을 꺼내들었다.

" 확인은? "

" 잠시... "

그는 뒤로 맨 가방을 앞으로 돌려 노트북을 꺼내려했다. 그순간! 공치열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퍽!' 강타했다!

" 컥! "

그의 안경이 날아가며 비틀거렸고, 곧장 공치열이 그를 덮쳐 넘어뜨렸다!

" 야이 시발 세끼야-! "

퍼벅 퍽퍽! 공치열의 주먹이 무차별적으로 그의 얼굴에 퍼부어졌다! 어느새 모자와 마스크가 벗겨져 엉망진창의 얼굴을 드러내는 그였다.

최기자는 뒤에서 이 모든 관경을 몰래카메라에 담았다. 커진 눈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만 보았다. 철저히 방관 할 셈이었다. 공치열이 폭력을 저지를지 전혀 몰랐다고 할 것이다. 당황해서 말릴 새가 없었다 증언할 셈이었다. 살인이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신고를 해 증인의 역할을 할 셈이었다.?

그가 벗어나질 못하게 위에 올라타 누르고 있던 공치열이, 최기자를 향해 소리쳤다.

" 형님! 저 돌 좀-! "

공치열의 고개가 한쪽에 있던 무거운 돌을 가리켰다. 최기자는 단박에 공치열의 의도를 깨달았다. 저 돌로 그를 내려찍어 죽일 셈이었다.?

" 형님-! "

최기자는 갈등했다. 저 돌을 가져다 준다는 건 공범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선 안됐다. 하지만 아직 공치열과 같은편으로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동영상 문제도 해결이 안됐다. 최기자는 어쩔 수 없이 가져다 주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그'가 죽는다면, 최기자가 공치열을 도운 사실은 비밀로 묻힐 것이다.

최기자는 양손을 밑으로 넣어, 무거운 돌덩이를 공치열 쪽으로 굴렸다!

근거리로 다가온 돌덩이를 양손으로 잡아든 공치열은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퍽!'

" 죽어-! "

" 큭! "

최기자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데, 그순간-!

" 꺄아악-! "

" ?! "

그가 타고 왔던 차에서, 웬 여자가 뛰쳐나와 달려나갔다!?

" 혀, 형님! 형님-!! "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공치열이 최기자를 불러댔다!?

최기자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었고, 행동은 더 빠른 사람이었다.?

" 옘병! "

최기자는 전속력으로 여자를 쫓았다. 저 목격자가 이곳을 벗어난다면, 영락없이 공치열과 최기자는 살인공범이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했다.?

여자의 달리기는 불안정했고, 이를 악문 최기자의 속도는 빨랐다. 어느새 여자를 따라잡은 최기자는 여자의 허리를 붙들고 넘어뜨렸다!

" 꺄악-! 사람살려! 꺄악-! "

" 큭! "

여자를 위에서 제압하고 입을 막은 최기자는 생각했다!

이제 어쩌지? 뭘 어떡하지?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 으읍! 읍! 읍읍! "

눈물 범벅의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소리를 질러대고- 그사이, 공치열이 '돌덩이'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공치열을 확인한 최기자는 여전히 생각만했다!

어쩌지? 뭘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어쩌지??

" 으으읍! 으읍! 읍! "

도리질 치는 여자를 보며 생각만 하는 공치열, 어느새 달려온 공치열이 소리쳤다!

" 비켜-!! "

자기도 모르게 압박을 풀며 뒤로 벌떡 물러나는 최기자!

" 으읍-읍! 끄흡,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 "

' 퍼억-! '

" 억...! "

최기자의 몸으로 여자의 피가 튀었다! 최기자의 멍한 눈으로 주변의 관경이 느리게 흘렀다-?

꿈틀대는 여자- 다시 돌덩이를 집어들고 재차 내려던지는 공치열- . . . 멎어드는 여자- 주저앉아 헐떡이는 공치열-. . .?

"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형님. 어서 뒷처리를...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 "

최기자는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최기자와 공치열은 그들이 몰고 온 차에 그들의 시신을 담았다. 인적없는 호수든 바다든, 차와 함께 수장시킬 셈이었다. 그보다 나은 계획은 생각이 나지도, 생각 할 힘도 없었다.

" 후우~ 형님...이게 다 임여우를 위해서입니다. 임여우를 위해서... "

" ... "

최기자는 말없이 USB를 만지작 거렸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USB를 만지작 거렸다.

한참동안 최기자가 말이 없자, 공치열이 다시 한번 침묵을 깼다.

" 그 동영상 USB도 함께 바다로 던져버립시다 형님. 이리 주십쇼. "

" ... "

여전히 USB를 만지작 거리던 최기자는, 공치열을 가만-히 보았다.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 ...한번은 봐야 되지 않겠냐. "

" 형님 그게 무슨! "

" 버릴 땐 버리더라도, 우리는 봐도 되지 않냐?! 임여우를 위해서 사람까지 죽인 우리는 자격이 있잖아! 다른 사람들 아무도 못보더라도 우리는! "

" 그...! "

공치열의 할말을 잃었다.?

최기자의 머리회전이 기능을 찾아갔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원래의 목적이라도 이뤄야 했다.

" 나는 솔직히, 한번은 보고 싶다. 더러운 팬이라고 욕해도 좋아. 그래도 한번은...보고 싶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

" ... "

갈등하던 꽁치도 솔직해졌다.

" 솔직히...저도 보고 싶습니다 형님. 왜 안보고 싶겠습니까? 임여우 동영상인데! 임여우인데! 솔직히, 정말로 정말로 보고싶습니다! "

" 그럼 보자. 보자고. 우리는 충분히 자격이 넘치니까. "

최기자는 차로 가 준비해온 노트북을 꺼내왔다. 그리고 꽁치가 보는 앞에서 USB를 연결했다. 서툴게, 동영상을 노트북으로 복사하는 행위따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최기자는 이미, 노트북의 화면 전체를 녹화중이었던 것이다.

최기자는 곧, USB에 담긴 동영상 파일 하나를 '전체화면'으로 재생시켰다.

[ 오빠~ ]

" ... "

인터넷에 퍼진 3초 동영상의 시작부분이 나왔다.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동영상에 집중했다.

[ 그만 찍고 빨리~! ]

[ 어~ ]

3초가 지나 임여우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점점 줌아웃 되며 배경이 드러나는 순간-!

" ! "

공치열과 최기자의 두눈이 놀라 부릅떠졌다!

침대 위가 아니었다. 모텔이 아니었다. 임여우가 옷을 벗고 있는게 아니었다.

그곳은 공사장이었다. 임여우는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공중에 매달린 강아지 한마리-. . .

[ 끼잉 끼잉 끼잉! ]

임여우는 나무 몽둥이를 휘둘러 강아지를 마구 가격했다. 깔깔깔깔 소리지르며 게임을 하는 듯 강아지를 때렸다. 강아지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아이처럼 웃어대며 좋아했다-

그건, 악마였다. 절대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임여우의 모습이 아니었다. 벌레 한마리에게도 미안해 눈물흘리던 임여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건, 악마였다.

끝내 강아지가 축 늘어져 반응이 없어질 때까지 몽둥이를 휘둘러댄 임여우. 웃으며 카메라를 돌아보았다.

[ 아~ 스트레스 풀려! 너무 재밌다! 오빠 다음엔 고양이로 하자! 응? 응? ]

" ... "

동영상이 끝났지만, 공치열과 최기자는 미동도 없었다.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죽은 그는 한번도 섹스 비디오라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저 아이돌 임여우의 동영상이라고만 했을 뿐...

가짜 팬인 최기자는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렸다. 공치열은 어떨까? 청순가련 아이돌 임여우가 아닌, 임여우의 진짜 본모습을 확인한 공치열은 어떨까? 깨어진 환상에 분노했을까? 후회할까? 최기자의 고개가 공치열을 살폈다.?

한참동안을 침묵하던 공치열의 입이 열렸다.

" 다행입니다 형님. "

" ! "

" 이 동영상을 우리가 먼저 처리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형님. 이제, 우리 임여우는 영원히 걱정이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우리 임여우는 꽃길만 걸을 겁니다. 우리 임여우는...! "

" ...... "

최기자는 생각했다. 공치열이 사랑하는건 인간 임여우인가, 아이돌 임여우인가.

최기자는 생각했다. 이제 이 동영상은 영원히 못쓰는 동영상이라고.?공치열의 이 '팬심'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이 동영상을 쓸 자신감이 없었다.?

임여우는, 꽃길을 걸을 것이다. 피묻은 팬의 손으로 가꾸어진 꽃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