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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2-24 23:23
와랑기...탈곡기...
 글쓴이 : 불로동
조회 : 1,504,451  


와랑기...탈곡기...


나는 이것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나 어릴적 두메나 산골.. 그러니까 일명 깡촌이라는 곳...
산 사이 몇 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형님 아제 할배.. 그런 사이의 작은 마실이었지.
그러니까 작은 마실이 모두가 이런 저런 촌수로 다 얽힌 그런 곳이었지.
난 아직 국민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코 찔질이 시절..
할매 속을 무던히도 썪이던 못된 손자..
그래도 할매 할배는 말썽꾸러기 손자가 좋다고만 허허.. 거리시던..

따가운 햇살이 점차 힘을  잃어갈 무렵이면 추수가 시작되고..
집집이 돌아가며 모여서 탈곡을 같이 하던 그런 풍경이 해마다 펼쳐지고들 있었지.
마을 어귀에는 이백년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마지막 푸르름을 자랑하는 계절..
우리 할배도 그땐 힘이 펄펄 거리시던 시절..
잠시 살았던 그 대청이라는 집 대문 곁에는 역시 이백년 되었다는 고목의 높고 굵은 돌배나무...
그 돌배나무 곁에서는 작은 산 같은 볏가리
장정들이 모여들고 우엇 거리는가 싶더니...
작은 산 볏가리가 허물어지며 탈곡기 위로 볏단이 하나 둘 얹혀지면 탈곡기는 신이나서 와~랑~ 와~랑~ 힘차게 울부짖으며 돌아가고
후두두둑 두두두둑...볏알들이 앞 멍석으로 쏟아져 날아가서 작은 동산을 이루어 주었지.
볏가리들이  천천히 허물어져 나가면  빈 짚단들은 다시 작은 산을 만들어 나가는 풍경이었어.

난 다시 쌓아올려지는 작은 산 같은 볕가리 위에 올라가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와랑기, 쏱아지는 볏알들, 장정들의 힘찬 움직임, 허물어져가는 산, 다시 나직하니 쌓아 올려지는 산...
그리고 바로 옆 까마득히 높은 돌배나무와 그 꼭대기의 까치..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까마득한 돌배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와~랑~와~랑~.. 와~랑~와~와~랑~....
까마득한 배나무 꼭대기의 까치는 이따금씩 배가 고픈지 까치집을 박차고 튀어올라 웅장한 돌배나무를 한 바퀴 돌고는
열려있는 돌배 하나를 향하여 부리를 앞으로 내밀고 돌진하여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까치의 부리에는 반드시 돌배 하나가 부리에 달려있었다.
신기했다.
까치는 그 전리품을 그 나무 꼭대기의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탈곡이 끝날 때 까지는 몇 번인가 까치의 그런 광경을 보게 된다.


고목의 돌배나무.. 둘레를 장정 둘이서 안으면 될려나?
높이는 얼마나 높은지... 나무 타기에는 이골이 난 두메나 산골 장정들이지만 중간까지 밖에는 올라가지 못하였다.
최고로 높이 올라간 것이 중간이었다.
그럴만큼 돌배나무는 높고 웅장했다.
중간 거기에서 장대로 돌배를 두들겨 털었다.
우두둑... 후두둑...
몇집 안되는 작은 마실의 젊은 장정들이며 노인네들이 한마당 모여서 쳐다보고 있다가 퍼 담는다.
돌배..
돌 같이 단단해서 돌배다.
높은데서 떨어져도 멀쩡하다.
몇개만이 땅에 맞은 자리가 약간 의 상처가 날 뿐 대개는 멀쩡하였다.
주워 담은 돌배는 작지만 옹골찼다.
맛은 시원하다. 좁쌀같은 것이 씹힌다.
동네 사람들은 시원하다 맛있다 단단하다.... 뭐 그런 말들을 쏟아 내었었다.
해마다....

겨울에도 가을에 남겨져 있던 돌배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가
매일 몇개씩 떨어진다.
매일 주워 먹는다.
찬 겨울에 찬 돌배.... 정신이 번쩍..
까치들도 흔해빠진 돌배나무를 한 바퀴씩 돌고는 돌배를 향해 부리를 내밀고 사정 없이 돌진해 나가면 어김 없이 돌배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겨울 날에도 매일 배나무 밑에는 돌배들이 몇개씩 뒹굴고 있었다.
나도 먹고.. 까치도 먹고..


이젠 쉰세대란다...
그립다.
그 정겹던 시골 그림이 그리웁다.
할배가 보고 싶다. 할매도 보고 싶다.
그 힘찬 장정들도 보고 싶다.
그 돌배도 보고 싶다.
그 까치도 그립다.
와~랑~기도 보고 싶다.
아~~
그 시절, 그 풍경, 그 어른들...
보고 싶다.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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